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컴퓨터가 나온다.
ARPC(Augmented Reality PC), 즉 '증강현실 PC'다. ARPC는 하드웨어 크기를 최소화하면서 화면 크기는 최대화하고 싶다는 수십년 된 필요의 궁극적인 해답이다.
또한 코로나 이후 등장한 원격 근무,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워케이션(workcations), 블레저(bleisure), 핫데스킹, 호텔링(hoteling) 등 새로운 업무 형태를 나타내는 다양한 신조어의 시대와도 잘 맞는다.
ARPC의 개념은 이렇다. 일반적인 컴퓨터지만 물리적인 디스플레이가 없다. 대신 증강 현실 안경을 착용해 가상 디스플레이를 본다. 즉, 컴퓨터의 크기는 보통 노트북 정도지만 디스플레이는 초대형이다. 미래에는 이와 같은 PC가 보편화될 수 있다. 사실 지금도 구매할 수 있다. 애플도 조만간 비슷한 기능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이 새로운 컴퓨터의 핵심적인 특징을 알아보자.
현실이 된 ARPC
가상 및 증강현실 PC는 지난 수십년간 공상 속 개념이었다.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 학생이 VR 고글을 착용하고 가상 세계로 들어가며, 그곳에서 화면 앞의 책상에 앉는다. 영화 <아이언 맨>에는 다양한 홀로그래피 디스플레이가 허공에 떠다닌다.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버스' 이니셔티브를 소개할 때 미래에는 모두 사무실로 출근하는 대신 고글을 쓰고 VR 사무실에 모이고, 그 사무실은 컴퓨터를 포함해 모든 것이 가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공상 속에 있던 이 개념이 최근 현실에 등장했다. 불과 한달 전이다.
사이트풀(Sightful. 이스라엘 스타트업으로, 예전에는 멀티내리티(Multinarity)였다)은 최근 'AR 노트북' 범주로 분류되는 스페이스톱(SPacetop)이라는 기기를 출시했다. 물리적인 하드웨어의 크기와 무게는 노트북 정도지만 가상 디스플레이 크기가 100인치다. 이 기기를 설계한 사람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매직 리프 출신의 엔지니어다. CEO인 아미르 버를라이너와 COO 토머 카한 모두 매직 리프 출신이다. 위스트론(Wistron)이 컴퓨터 내부를 만들고, 엔리얼(Nreal)이 안경을 공급한다. 사이트풀은 “캔버스”라고 부르는 공간 환경을 설계했다.
이 업체의 영상을 보면 이 제품의 가치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업체의 웹사이트를 보면 밴에서 생활하는 노마드 라이프스타일, 요트 위에서 거대한 가상 화면을 사용하는 사람의 사진 등이 올라와 있다. 업체는 홈 오피스나 일반 사무실에서도 스페이스톱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제품은 1,000개 한정이며 가격은 각각 2,000달러로 누구나 주문할 수 있다. 단, 실제 제품을 받을 수 있는 '열정적인 얼리 어댑터'는 업체가 선정한다. 안경 사용자는 추가 비용 없이 맞춤 도수가 설정된 헤드셋이 제공되며, 배송 시기는 7월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성은 흠잡을 데 없다. 크롬북과 비슷하게 스페이스톱 OS(Spacetop OS)라는 브라우저 운영체제를 사용한다. 이 운영체제를 통해 클라우드 기반 온라인 앱과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포트가 있으므로 원한다면 실제 모니터를 연결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일반 노트북과 마찬가지로 USB-C 포트와 와이파이, 블루투스, 화상 통화를 위한 500만 화소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메모리는 8GB, 스토리지는 256GB이며 배터리 사용 시간은 약 5시간이다.
애플도 이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애플은 이미 가상 디스플레이를 개발 중이라는 루머가 계속됐는데, 실제로 지난 5일 비전 프로(Vision Pro)를 공개했다. 증강 현실(AR)에 최적화된, 즉 실제 패스스루 비디오 위에 가상의 사물이 겹쳐 표시되어 AR 환영을 만들어내는 가상 현실 고글이다. 블룸버그 기자 마크 거먼은 애플이 비전 프로를 개발하면서 ARPC 개념을 연구해왔다고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 기기는 맥용 외부 모니터 역할을 포함해 생산성 기능도 갖추게 된다. 이 기능을 통해 사용자는 맥의 디스플레이를 가상 현실에서 보면서 트랙패드나 마우스 또는 물리적 키보드로 컴퓨터를 계속 조작할 수 있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ARPC 기능 외에도 AR 회의 등 다양하지만, 최우선순위는 ARPC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2가지다. 첫째, 개발자가 거대한 가상 디스플레이를 바로 활용할 수 있다. 개발자는 대형 디스플레이를 선호하고 디지털 노마드 업무 방식에도 매우 우호적이다. 둘째, AR 회의 기능은 나 이외의 다른 모든 사람도 같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때 그 장점이 극대화된다. 많은 사람이 애플 고글을 사용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ARPC가 지금 바로 필요한 기기인 이유
대작 콘솔 게임을 개발하는 데 보통 몇년이 걸린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VR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그보다 더 좁은 범위의 AR 애플리케이션이 시장에 나오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애플의 지난 AR 역사를 돌아봐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플은 개발자들에게 개발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고자 오래전에 이미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AR 기능을 넣었다. 현재 출시를 목전에 둔 비전 프로 역시 주로 개발자에게 혜택이 된다. 미래의 최종적인 제품은 일반 안경과 똑같이 생긴 AR 안경일 테니, 그 전까지가 애플 개발자에게 AR 앱을 개발할 시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ARPC를 실행하는 누구나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기는 데스크톱 또는 클라우드의 기존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사이트풀과 같은 기업은 AR 기능을 단일 목적으로 제한해 비용을 낮추고 이미 시중에 있는 풍부한 앱을 통해 탁월한 기능을 제공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매직 리프와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의 경우 3D 공간에 있는 임의의 사물과 표면에 가상 사물을 “고정”할 수 있도록 3D 공간 지도를 작성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썼다. 반면 스페이스톱은 스페이스톱 기기 뒤쪽이라는 항상 같은 장소에 AR 화면을 고정한다. 훨씬 더 쉬운 방법이다.
다르게 말하면, 기업을 위한 AR 및 VR 제품과 서비스는 여전히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설계하고 개발해야 하는 기술과 애플리케이션에 주로 의존하는 데 반해, ARPC 제품은 기존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할 수 있고 따라서 사용하기 위한 별도의 교육도 불필요하다. 이것이 기존의 문제, 즉 더 큰 화면을 원하는 모바일 작업자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정리하면 ARPC 개념은 타당성이 있고 효율적이며 경쟁력이 있다. 시기도 적절하다. 필자가 곧 대형 AR 화면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강력하게 예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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